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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13)‘학의 날개’로 대첩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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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3.13  10: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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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항포 해전에서 패한 후 이순신 함대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한 왜군은 조선함대의 공격에 맞받아 싸우던 소극적 전법에서 벗어나 수군력을 총동원, 큰 전투를 통해 조선수군을 완전히 격파하려는 작전으로 나서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왜군은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등 쟁쟁한 해군장수들로 대규모 연합함대를 구성하고 서쪽을 향해 전라도 해안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이순신 장군도 조선수군의 모든 함대가 힘을 합쳐 과감한 선제공격을 통해 일본 수군을 격파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1592년 7월 6일,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우수군연합함대는 노량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전선 7척과 합세, 전투 진용을 짜고 일본의 정예 주력함대와 대회전을 벌이기 위한 출전 길에 나선다. 함대의 규모는 전라좌우수군으로 이루어진 48척의 주력함대에 원균 휘하의 배 7척을 합한 55척이었다.

7월 7일 고성의 당포에 이르른 이순신은 거제도에 사는 김천손金千孫이라는 목동으로부터 거제와 통영 사이의 작은 해협인 ‘견내량’에 수많은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는다. 견내량에 정박한 왜선들은 와키자카의 함대로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등 모두 73척으로 구성된 대선단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곳 견내량 해협이 큰 전투를 벌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다. 견내량은 바다가 좁고 암초가 많은데다 썰물 때가 되면 개펄이 드러나 조선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이 제구실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이순신은 견내량의 왜군을 한산도 앞의 넓은 바다로 유인해 일전을 벌이기로 결정한다.

조선수군의 유인작전에 현혹된 왜군은 마침내 짐짓 도망하는 조선군을 추격, 곧 한산도 바다로 나오게 된다. 그러자 그때까지 쫓기던 조선함대는 일제히 진을 펼치며 왜선을 포위했다. 이때 조선수군이 펼친 진법이 그 유명한 ‘학익진’이다.

적의 함대를 날개를 편 학의 형상처럼 입체적으로 포위, 퇴로를 차단하고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이 진법은 무엇보다도 조선수군의 주력화기인 화포와 총통의 명중률을 높이고 다량의 화포를 쉼 없이 발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 학익진으로 왜군 함대를 넓게 포위한 다음 거북선을 앞세워 돌진하며 모든 전선에서 일제히 화포를 내뿜었다. 포위된 왜선은 퇴로를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침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수군은 73척의 왜선 중 47척을 침몰시키고 12척을 나포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 빛나는 승리가 임진왜란 수군전투사상 최대의 승리로 기록된 ‘한산대첩’이다.

한산대첩은 여러 면에서 개전 이래 조선의 일방적인 수세로 이어져온 전쟁의 흐름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뜻깊은 전투였다. 무엇보다도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 육지와 바다 양쪽으로 진격하려 했던 왜군의 이른바 ‘水陸竝進’ 작전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울러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무사히 지켜냄으로써 조선 군대와 明나라 援軍의 군량미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산대첩은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이 궁극적으로 조선의 승리로 귀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투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 함대가 왜군을 유인했던 견내량 해협은 현재 통영과 거제를 잇는 거제대교가 지나는 그 바다 언저리다.

통영 쪽에서 거제대교를 건넌 후 다시 바닷가로 내려오면 옛 지명 그대로 ‘견내량 마을’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한적한 마을의 앞바다가 바로 견내량 해협이다. <임진장초>의 기록처럼 바다의 폭이 매우 좁고 물이 빠지면 넓은 개펄이 드러나 섬 아낙네들이 떼지어 굴을 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견내량의 왜군함대를 유인해 일전을 벌인 한산도 바다는 통영이나 거제에서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타면 지날 수 있다. 통영에서 한산도로 가는 배는 여러 편이 있다. 한려수도의 여러 섬을 들르는 여객유람선을 탈 수도 있지만, 한산도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답사하려면 통영과 한산도만을 오가는 도선을 타는 것이 좋다. 이 배는 자동차도 실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면으로 편리하다. 배 시간은 한시간 간격으로 해가 저물녘까지 있다.

한산도로 가는 길은 운치있는 뱃길이다. 한려수도를 이루는 크고 작은 섬들이 사방에 점점이 흩어져 있고, 남해 특유의 잔잔한 물살은 흡사 호수 위를 미끄러지는듯 유려하다.

통영항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이면 배는 멀리 한산도를 그림처럼 앞두고 사방이 탁트인 넓은 바다의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바다가 이순신 함대가 견내량의 왜군을 꼬여내 무찌르던 그 곳이었을 것이다. 뱃전에 서서 눈을 감으면 그날 그 거대한 전투의 함성과 포성이 아련히 들려오는 듯도 하다.

(다음호에는 ‘한산도의 통제영 유적’편이 이어집니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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