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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우리땅, 아름다운 숨결(6)신라五嶽에 선 문무왕 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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狼山에 남은 문무왕 유적 … 능지탑과 사천왕사지
경주에는 우리의 귀에 익숙한 산이 여럿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유명한 토함산이 있고, 흘러간 옛 노래 ‘신라의 달밤’에 나오는 금오산, 즉 南山이 있다. 그런데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산인데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중요한 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낭산(狼山)이다.
경주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인 낭산은 이른바 신라 五嶽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경주의 鎭山으로 ‘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황복사지’ 등의 중요한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사적이다. 그러나 경주를 몇 번씩 다녀왔다는 사람도 이곳에는 들러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화려하게 단장되고 사람이 많은 곳만 쫓아다닌 까닭이다. 그런데 이 낭산 기슭에 문무왕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 두 곳이 있다. 능지탑과 사천왕사지가 바로 그곳이다. 이중 특별히 ‘능지탑’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일 것이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 문무왕은 죽음에 이르러 자신의 장례와 관련된 유언을 남기는데 이 유언에서 그는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되 궁궐의 ‘고문 바깥 뜰’(庫門外庭)에서 하라며 구체적인 장소까지 지정해 주고 있다. 학자들은 이 기록에 나오는 ‘庫門外庭’이 바로 이 낭산 기슭이며 능지탑은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능묘탑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능지탑은 문무왕의 시신이 화장된 곳이라는 얘기이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능지탑은 문무왕의 해중릉에 대비되는 육지의 능묘인 셈이다.
1960년대 말, 4년에 걸친 경주 낭산 조사 당시 발견된 이 유적의 흔적은 4각의 기단석 각 면에 12지신상을 두른 거대한 탑 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정확한 본래 모습을 추정하기 어려워 일부만 복원된 상태로 남아있다. 이 탑은 사찰에 세워지는 불탑과는 전혀 계보가 다른 데다 참고가 될 만한 다른 사례도 없기 때문에 정확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금도 능지탑 주변에는 탑을 쌓는데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석재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이처럼 남아있는 석재의 양만 보더라도 능지탑의 규모는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전체적인 모습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탑의 기단부에 조각된 십이지신상은 사뭇 세련된 솜씨다. 한눈에도 임금과 관련된 유적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인적이 드문 야트막한 산기슭에 고독하게 서 있는 이 거대한 탑 앞에 서면 바다 속에 있는 무덤인 대왕암이 주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허허로운 폐사지로 남은 사천왕사지가 있다. ‘사천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네 분의 방위신이다.
이 사천왕사의 창건에 얽힌 설화는 사뭇 신비하고 드라마틱하다. 삼국이 통일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서기 674년, 당나라는 신라마저 집어삼키려는 야욕으로 50만 대군을 일으켜 신라 정벌에 나선다. 문무왕은 부처님의 힘으로 이를 막기 위해 密敎의 고승인 명랑법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명랑법사는 이곳 낭산 기슭에 사찰을 지을 것을 충고한다. 그러나 절을 완공시킬 시간이 없어 문무왕은 비단과 풀로 절의 형상만을 만들게 하고 명랑법사는 이곳에서 밀교의 신비한 비법인 ‘문두루비법’을 펼친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풍랑이 일어 당나라 군사를 실은 배가 모두 침몰해 버린다. 문무왕은 이를 크게 기뻐하며 다시 불사를 일으켜 5년만에 절을 완공하고 이름을 ‘사천왕사’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사천왕사야 말로 둘도 없는 호국의 성지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절의 형체는 전혀 남아있지 않고 무성한 풀밭에 건물의 주춧돌과 당간지주와 같은 일부 시설의 흔적들이 뒹굴고 있다. 남은 유적으로 추정하건대, 사천왕사는 법당 앞에 2기의 탑이 있는 전형적인 ‘쌍탑식가람배치’를 한 멋진 사찰이었을 것이다.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의 침략까지 막아내 우리 역사의 가장 찬란한 시대를 연 문무왕의 호방한 기상과 위업은 오늘날에도 깊이 되새길 가치가 있다.
낭산 언저리는 경주의 교외로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시골풍경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사천왕사의 무너진 옛터에서 내려다보는 경주의 들녘이 여행객을 깊은 사념에 빠지게 한다.
이상 3회에 걸쳐 소개한 경주 문무왕의 유적들은 길어야 1박2일, 서둘러 움직이면 당일로도 충분히 답사할 수 있는 코스다. 최적의 코스는 낭산의 능지탑과 사천왕사를 보고 토함산에 올라 불국사와 석굴암을 본뒤, 석굴암에서 감포로 향하는 산간도로를 따라 감은사를 거쳐 대왕암에 이르는 것이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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