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 If’란 단어 자체가 주는 묘한 매력만큼이나 그 상상력의 유혹을 쉽게 외면하기란 힘든 일이다.

선택의 순간, 그리고 그 이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호기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만약 대학입시원서에 약대를 쓸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또 약사라는 직업과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와 같은 생각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이론에 따르면 그 작은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나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IF’란 단어 자체가 주는 묘한 매력만큼이나 그 상상력의 유혹은 쉽게 외면하기 힘듭니다.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게 암살 당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의 참전에 실제 원자폭탄으로 응수했다면(3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며, 통일한국이 됐을 수도 있겠죠), 같은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탄생했을 테죠.

그래서 이번엔 이런 대체역사소설을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와 근래 처녀 번역된 해리 터틀도브의 <비잔티움의 첩자>입니다.

먼저 <비명을 찾아서>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했다’는 상황에서 출발해서 1980년 현재까지 아직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상태로 놓여있는 충격적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의 정치적 중요성을 꽤 감안해서 만들어진 그럴듯한 대체역사소설이지요.

이 책을 읽다보면 한일합방이후 끈질긴 문화말살정책으로 이제는 거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이전시대의 훌륭한 유산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식민지 이등 국민으로서의 열등의식으로 가득한 주인공의 모습을 봅니다.

대체역사소설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풍자가 담겨있기 마련인데 이 책에선 고유문화(말과 글등)로 형성되는 민족정체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듯 싶더군요.

몇 달 전 국내에는 처음 번역되어 나온 <비잔티움의 첩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체역사소설입니다. 비잔틴(동로마제국)의 역사에 해박한 교수가 쓴 책이기에 고증면에 있어서도 단지 반짝하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쓴 소설이 아니라 꽤나 깊이 있는 비잔틴사회의 모습을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설정은 ‘교역을 위해 시리아로 떠났던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하는 대신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에서 출발합니다.(아예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게 만드는 놀라운 상상력이란…) 이로인해 벌어지는 연쇄반응으로는 아랍문명의 대확산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사라지고 중세까지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왕조라는 두 강대국이 서로 견제하며 대립하는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이 소설은 이러한 세계 속에서 비잔틴과 페르시아 양진영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 어떨까요? 꽤나 흥미로운 설정이 아닌가요? 저는 역사, 특히나 세계사를 무척이나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이야기나 중세이야기에 탐독하곤 했는데 의외로 비잔틴제국에 대해선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쇠락해가는 로마를 쇄신하고자 제국을 동과 서로 나눈 뒤 자신은 로마가 아닌 콘스탄티노플(나중의 비잔틴움과 이스탄불이 되는)로 옮겨가면서 비잔티움은 문명의 중심이 되기 시작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마지막은 동과 서로 갈라진 로마제국 중 서쪽이 멸망하는 장면에서 끝이 나지만, 이후 비잔틴 제국은 근 1000년이나 서유럽의 관문에서 중동의 확산을 저지하며 그리스문명 보존의 역할을 하게되죠. 그러나 카톨릭과 동방정교와의 차이도 확연하고 생활습관도 꽤나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을 정치, 문화의 모범으로 보는 학자들에게서는 비잔틴은 꽤나 이질적이었기에 곱게 다루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이 책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비잔틴의 문화를 은연중에 드러내며 빠져들게 합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평화 속에 비대해져버린 관료사회의 비효율성을 꼬집기도 합니다.

사실 <비명을 찾아서>가 좀 무겁다면 <비잔티움의 첩자>는 읽는 재미에 있어서는 훨씬 낫답니다. 그러면서 여러 과학적 발견-우두종법의 발견, 화약, 그리고 망원경의 발견-과 신학적 논쟁을 일으키는 테마-성상문제와 삼위 일체설-등을 스토리와 긴말하게 엮어내는 재주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런 대체역사물들의 문학적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쉽지는 않은데요, 그럼에도 흥미로운 상상력과 꼼꼼한 고증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역사 읽기의 재미는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겠네요.

내가 가지 못한 길을 상상해보며 지금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듯이 가끔씩은 지금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도 꽤 흥미롭지 않을까요?

우동준 약사는 성대 약대 96학번으로 경남 거창에서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으며 약사 커뮤니티인 약준모에서 바이~앨리!!라는 필명으로 문화 관련 글들을 연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