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행을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들을 일깨우는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수필가. 장 그르니에.

아련하고 외롭고 쓸쓸함을 지닌 등대. 그렇지만 멀리 빛을 비추기 위해 그런 외로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런 등대지기를 떠올려 본다.


여행이 일상 속에 죽어있던 나의 감각들을 되살려주는 것만은 사실이겠죠.

오늘이 어제 같고, 또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를거 없을거라는 생각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마저 암울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 와중에라도 여행이란 단어만큼 설레임을 주는 게 또 어디 있을까요?

저도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다니다보면 낯선 이들도 만나고, 신기한 것들도 보게되며 맛난 그곳의 음식들도 먹게됩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되더군요.

낯선 문화를 겪으면서 이제껏 일상에 젖어있던 생각들보다는 뭔가 새롭고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껏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놓았던 생각들. 너무 뻔하고 각박한 삶 속에서 버려 두었던 소중한 감성들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호주를 홀로 배낭여행할 때 였습니다. ‘바이런 베이’란 곳을 찾았는데 이곳은 서핑의 메카로 유명한 곳입니다. 허나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서핑 때문이 아닙니다.

등대 때문이지요.

오로지 등대, 그것도 더 이상은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등대 하나를 보러 이 도시에 머물렀고 또 그것을 보러 40분이상 걸어서 올라갑니다.

그렇게 힘들게 온만큼 하얀 등대는 예쁘고 멋집니다. 등대란 단어의 울림이 어떤 건지 우리는 잘 압니다. 아련하고 외롭고 쓸쓸함. 그렇지만 또 멀리 빛을 비추기 위해 그런 외로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런 등대지기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호주의 동쪽 끝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리도 ‘끝’이란 말에 의미를 두는지요.

마라도, 백령도같은 곳은 물론 이곳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꼭 가게 되는….

그러나.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끝’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곳 너머엔 망망대해만이 펼쳐져있습니다. 끝이란 말이 무색하리만큼.

‘끝’이란 어떤 느낌의 단어일까요? 사람들은 ‘끝’이란 말을 통해 자신의 한계선을 긋게됩니다. ‘이정도까지가 내영역이야’, ‘우리 영역이야’,‘여기까지만 하면 돼’. 한계를 정하게 되면 아무래도 생각이나 일하기가 쉬워지기는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한계 앞에 미리 선을 그어놓고(끝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끝이라는 건 벽이 아닌 다시 바다로 나가는 일일텐데 말이죠. 바이런 베이의 등대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이 끝이다’라기 보다는 다른 곳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게 등대를 비추는….

저는 제 모습 가운데서도 미리 끝을 정해놓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보다도 훨씬 더 적게. 약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끝이란 스스로의 마음속에 그어놓은 작은 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신이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작은 변명거리일 뿐임을.

한쪽 땅의 끝이지만 등대를 통해 다시 더 멀리 바다로 뻗어나가는 빛을 바라보며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답니다.

그곳에서의 인상이 너무 깊어 늘 등대같이, 끝이 ‘보이는 끝’으로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한계, 스스로 혹은 누군가가 미리 그어놓은 선을 지우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삶이 답답해지고 무언가 놓쳐버린 듯한 느낌이 들면 언젠가 여행을 떠났을 때의 추억들을 떠올려보며 내 안에 제대로 숨쉬지 못하는 감정들을 찾아 숨쉬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조금은 숨이 트였으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 우동준 약사는 성대 약대 96학번으로 경남 거창에서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으며 약사 커뮤니티인 약준모에서 바이∼앨리!! 라는 필명으로 문화 관련 글들을 연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