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루이스 샤폰 <바람의 그림자>·발트 뫼르스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이번호 부터 ‘바이앨리’ 우동준 약사의 사방팔방 문화기행을 연재합니다. 서평은 물론 각종 전시회 기행기등 다양한 소재의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 바랍니다. <편집자>

여름에는 너무 더워 짜증나는 일상을 잠깐이나마 탈출해 단지 시원함을 느끼는데 전력했다면, 가을에는 무언가를 수확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지 않나요? 과실이 맺히고, 푸르름을 뽐내던 잎들이 이젠 마지막으로 자신을 빛내며 낙엽이 되는걸 보면, 나 자신도 무언가를 수확하고픈 그런 마음 들지 않나요?

그래서 가을은 독서가 가장 하고픈 계절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인지 모릅니다.

개인별로 좋아하는 책의 장르나 작가들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만큼은 참 즐거웠습니다.

책을 읽는 일은 먼저 재미를 주고, 점차 감동하게 만들다가 마침내는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게 독서의 매력이죠. 책을 읽고 나면 무언가 충만함을 느끼며 뿌듯해하면서도 또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문득 예전의 잊었던 자신의 비슷한 경험도 떠올리곤 하죠. 여러모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삶의 활동 공간이 좁아질수록 생각하는 힘, 상상력도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프랑스 6·8혁명의 과격한 문구를 동원하지 않는다 해도, 상상력이 삶을 더 윤택하고 즐겁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읽기가 즐거운 이유랍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책을 소재로 한 작품을 알아볼까요?

책에는 수많은 비밀들이 담겨있었기에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아르트루 레베르테의 ‘뒤마클럽’ 등 정말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담아놓았다는 책들로 인해 펼쳐지는 모험과 스릴러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습니다.

그럼 최근에 출간되어 아주 재밌게 읽을 만한, 책을 소재로 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카를로스 루이스 샤폰의 <바람의 그림자>와 발트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입니다.
두 책은 공교롭게도 작가와 그 산물인 작품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다루는 방법은 아주 다릅니다.

<바람의 그림자>의 경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운명적 사랑과 비극에 대한, 어찌보면 지극히 통속적인 이야기가 스페인내전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대단한 소설입니다.

초반부에 작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깔아놓은 복선들이 뒤에 가서 밝혀질 땐 그 치밀함에 놀랄 뿐이죠.

책 읽기의 중독이란 말은 이 책 같은 부류를 일컫는 듯 싶습니다. 사소한 묘사라도 그가 하는 방식은 제게는 참 설레게 느껴졌습니다.

그에 비해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뭐랄까, 신나는 판타지 모험활극 같습니다. 일단 주인공도 작가지망생 공룡이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외눈박이 부흐링족, 전설적인 책 사냥꾼 노루개, 그림자 제왕 등 작가의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펼쳐진 듯한 세계의 모험극입니다. 마치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을 연상시킵니다.

다만 작가는 부흐하임-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통해 창작과 비평, 출판 등에 대한 풍자와 은유를 맘껏 드러내고 있으니 이 또한 흥미롭답니다.

다들 ‘이번엔 책 좀 읽어야지…’하면서도 부족한 시간 탓을 하며 그냥 지나치곤 합니다.
혹 남들이 그런 핑계를 대면 머뭇거리는 동안, 당신이라도 책을 읽으며 온 마음이 즐거워지고 따뜻해지고 무언가 풍성해지는 것 같은 느낌.

나만의 열매가 맺히는 것 같은 느낌을 한번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약국이라는 좁은 삶의 범위가 내 상상하는 힘을 가두지 못하게 말이죠.

필자 소개 우동준 약사는 성대 약대 96학번으로 경남 거창에서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으며 약사 커뮤니티인 약준모에서 바이∼앨리!! 라는 필명으로 문화 관련 글들을 연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