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藥一體’ 꿈꾸는 학구파 약사

지난호 릴레이 인터뷰 주인공인 원진제약 서준석 사장이 안양시 대일약국 하성상 약사에게 바통을 넘겼다.

대일약국 하성상 약사(서울대 약대 56학번)는 안양에서 30년 넘게 약국을 경영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하 약사는 한일약품에 입사, 지금은 없어진 ‘프로모터’라는 직책을 맡았다. 회사에서 집중해 육성하기로 정한 제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게 업무였다. 하 약사는 ‘프로모터’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 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약회사를 차렸다.

발품을 팔아가며 약국이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수입하거나 했는데, 약국이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발매한 제품이었기 때문에, 적중해 회사는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금 조달문제가 불거져 문을 닫고 말았다.

하 약사는 회사를 정리하고 지난 72년 대일약국을 열었다.

대형약국임에도 대일약국은 매약보다는 조제로 이름을 날렸다. 이 시절 하 약사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약국 투약의 실제’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다.
의사들이 수련의 시절 임상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부럽게 생각한 하 약사가 임상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발간한 것.

지난 93년 하 약사는 대형약국이던 대일약국을 정리하고 옆 건물인 현재 약국 위치(3층)로 약국을 이전했다.

매약을 환자 상담을 저해하는 요소로 판단한 하 약사가 매약을 과감히 접고 환자 상담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에서 약국을 3층으로 옮긴 것.

대일약국이 대형약국이던 시절에도 한약에 관심이 많았지만 한약 붐이 일던 지난 93년 하 약사는 56세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한약을 공부하기 위해 도미(渡美)했다.

출석하는 안양감리교회에서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의료실을 운영했는데,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치과의사가 하 약사 혼자 의료실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약사밖에 없는데 의료실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하 약사는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에 두 번만 휘말리면 결국 사회적 사망에 이르고 마는 미국 의사들을 보면서 내 선택이 옳았음을 절실히 느꼈다”고 회고했다.
의료사고 발생을 두려워하는 미국 의사들은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진단에 자신이 없으면 아예 한의원으로 환자를 유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 약사는 지난 99년 미국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하 약사의 한방에 대한 이해는 이를 계기로 더 깊어졌다.

하 약사의 자녀는 세 명인데, 장남과 외동딸은 한의사, 차남은 의사다.
양ㆍ한방을 모두 이해해야 진정 질환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하 약사는 장남과 외동딸에게는 양방에 대한 이해를, 차남에게는 한방에 대한 이해를 각각 주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양ㆍ한방 협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지만, 중국과 북한의 의사들처럼 환자에 적합하게 양ㆍ한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이상적인 형태라고 하 약사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같은 평소 신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하 약사는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 약사는 첫 회에 한해 나이를 제한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원로급 약사로서 하 약사는 의약분업이야말로 약사가 제 직역을 찾을 수 있게 된 계기라고 강조했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을 임의로 처방조제함으로써 조제하면서도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불안해 했지만 현재는 검증된 약을 의사가 처방한 대로만 조제하면 되기 때문에 자신이 내린 처방이 잘못된 것인지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
의약분업으로 ‘약사다운 약사’가 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는 마련됐으며, 약사들이 어떻게 하느냐만 남았다고 하 약사는 강조했다.

“진정한 약사다운 약사가 되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며 하 약사는 후배들이 더욱 정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임철원 기자
사진 윤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