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시대의 이웃사촌 ‘영원한 반장’

지난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인 조성오 약사가 이웃사촌인 백악관약국 황기태 약사에게 바톤을 넘겼다. 광진구 약사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 중인 조 약사에게는 반장으로서 항상 적극적으로 회무에 동참하며 도움을 주는 황 약사가 너무나 든든한 동지이자 이웃이다.

황기태 약사(경희약대 72학번)에게는 ‘반장님’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린다. 요즘은 왠만하면 피하려고 한다는 반장직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은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처방조제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저녁시간이 되면 황 약사는 반원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급한 용무야 팩스나 메일로 처리하기도 하지만
반원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직접 듣는 재미가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황약사가 소속돼있는 광진구약사회는 얼마전 반회 조직을 개편했다. 연수교육을 반 단위로 실시하기 위해 두세개 반을 하나로 통합하여 규모를 키운 것이다. 황 약사가 관리해야 할 약국도 26개로 늘어났다. 분회 연수교육을 반 단위로 실시하기로 한 것은 침체돼있는 반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최후의 방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업되고 나서 많이 삭막해졌죠. 처방전 따라 생기고, 없어지고를 거듭 하다 보니 이웃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게되고... 신규약국이 많은 지역은 특히 관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낯설어서 그런지 반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의약분업 직후와는 달리 요즘은 딱히 사람들이 모일만한 이슈나 구심점도 없어 무작정 반회에 나오라고만 하기도 힘들더군요. 조직체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회통합을 시도한 광진구의 자그마한 변화는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것이 황 약사의 자평이다. 분회 연수교육을 반 단위로 실시하다 보니 최소한 일년에 네 번은 반원들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1981년부터 이 지역에서 약국을 운영해온 황 약사가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반회 모임 활성화에 앞장 선 탓인지 이제 반원들은 없는 약이 있으면 서로 전화를 해 교환하기도 하고, 늦은 저녁 시간에 모여 티타임을 즐기기도 한다.

친목 도모를 통해 개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사실 황 약사에게는 새로운 테마가 아니다. 몇 해 전에는 동부개국약사 친목회라는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경희약대 동문회에서는 총무직도 맡고 있다.

반회 모임은 개국 일선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일종의 창구 역할을 한다. 분업에 대한 개국가의 크고 작은 불만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 조달과 재고약 처리 문제가 역시 가장 큰 이슈다. 의약분업 시행 3년째를 경과하면서 유효기간이 경과한 약들이 계속 쏟아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향정약 관리, 프로그램 오류, 보완·이의 청구 등 분업 이후 처리해야 할 행정적 업무도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황 약사는 “제도의 변화에 순응하며 또다른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방식”이라는 말로 반원들을 설득해왔다.

사실 분업 전만 해도 황 약사는 ‘약 잘 짓는 약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임의조제가 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분업 이후 이같은 기득권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의약분업의 본질이기 때문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대신 약에 대한 풍부한 노하우를 충실한 복약지도로 승화시켰다.

황 약사는 피부병 환자 하나라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다. 복약 방법에서부터 식이요법,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침이 마르도록 복약지도를 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덕분에 약국을 옮긴 이후에도 기존 환자의 2/3 이상이 여전히 황 약사의 약국을 찾는다. 제도의 변화는 적응하기 나름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황 약사는 동문간에도 으르렁거리기 일수인 각박한 세태가 너무나 안타깝다고 한다. 철저한 개인주의 속에서 자신만의 담을 쌓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이웃간의 오가는 정과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체육대회, 등산대회처럼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취미생활과 봉사활동 등 반회 모임을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최윤희 기자 yhchoi76@pharmacyok.com
사진·윤강희 기자 khyun@jang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