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인 김석민 약사(서울시 광진구약사회 약학위원장)가 “내 약국을 돌보지 않고 회무에 열정을 갖고 임하는” 조성오 여약사 담당 부회장을 다음 인터뷰 주인공으로 추천했다.

“오늘 오후에 시간이 어떠신지요?”

“약사회에서 일을 봐야 하기 때문에 힘들겠군요”

인터뷰 대상이나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나 서로 바빠 약속하기가 힘들 수 있지만 조성오 약사와는 여느 약사들과는 다른 이유 때문에 약속하기가 힘들어 김석민 약사의 이야기가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잘 알 수 있었다.

낡은 간판에서 연륜을 짐작할 수 있는 파마트 새은광약국은 병ㆍ의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동네약국이다.

조성오 약사(숙명여대 74학번)는 약 20년 전인 1984년 지금 자리에 새은광약국을 개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78년 약대 졸업 후 이듬해인 79년 남편 발령에 따라 도미(渡美)한 조 약사는 내조만 하다가 84년 귀국 후에야 약국을 차리게 됐다.

약국을 연 지 2년만인 86년 조 약사는 약국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약국을 그만둬야 딸에게 충실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심을 막은 것은 오히려 딸이었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이 “엄마 약국 문 닫으면 늘 머리 아파 고생하는 동네 아줌마들은 누가 고쳐주냐”며 반대한 것.

조 약사는 딸이 엄마가 하는 일을 참 필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다시 마음을 잡고 약국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조 약사는 지난 90년 약사회 ‘자양반’의 반장을 맡으면서 회무와 인연을 맺었다. 주변약국 약사들이 마음의 여유없이 너무 아둥바둥 산다고 생각한 조 약사가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것.

반회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해서는 일일이 찾아 논의내용을 설명하는 열성을 발휘했다.

조 약사의 이같은 열정은 92년 한약위원장을 맡은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한의대 학생들만 공부하고 다른 이들은 구하기조차 힘들던 ‘본초학 강의’ 책자를 어렵사리 얻어 대한약사회 한약위원장을 강사로 초빙, 본초학 강의를 진행한 것.

또 당시 5백50명 회원들이 모두 한약조제자격시험에 꼭 응시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지난 93년 발생한 한약분쟁은 조 약사로 하여금 회무에 더 빠져들게 했다.

조 약사는 진행상황을 지켜보면서 모든 모임이 다 그렇겠지만 약사 회무야말로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봉사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됐다고 한다.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조 약사도 이전이냐 폐업이냐를 놓고 고민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너마저 떠나면 이 동네에 사는 나같은 늙은이들은 어디서 약을 구하겠냐”며 만류하셨다.

남편과 논의 끝에 수입에 욕심내지 않고 주민들을 위해 더 봉사하기로 결정했다.

조 약사는 약사회 임원으로서 회원들을 위해서도 적어도 5년은 더 약국을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악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거나 악조건 속에서는 어쩔 수 없다든지 그 어느 것이든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려면 실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변에 병의원이 없어 일일 평균 처방전 접수량이 10건밖에 되지 않아 어렵다는 사정을 뻔히 아는 이웃 주민들이 “이사가지 않아 고맙다”고 얘기할 때 조 약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조 약사는 약사회서 회의가 있는 날이면 양해를 구하는 말을 붙이고 아예 문을 닫는데 그럴 때마다 다른 곳에서 약을 조제하지 않고 셔터 밑에 처방전을 놓고 가는 이웃들이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여약사 담당 부회장으로서 조 약사는 회원들을 이끌고 관내 소년소녀가장 20세대와 독거노인, 어머니의 집 3곳을 찾아 꾸준히 봉사하고 있다. 지난해는 회원 33명과 함께 약사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소록도에서 봉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