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인 송순애 약사가 서울시 중랑구 성지약국의 이준령 약사에게 바톤을 넘겼다. 두 사람은 한 체인 업체의 공부모임에서 만난 사이. 같은 반 동무처럼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이 정겹다.

이준령 약사는 서파푸아뉴기니에 있는 외딴 섬에 학교를 짓고 있다. 세계 3대 오지 중 하나인 이라얀자야섬은 정부와 연락이 닿지않는 부족만 30개가 넘는, 그야말로 ‘미지의 땅’이다. 지난해 8월 이 곳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 약사는 온갖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눈빛만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현지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몇날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짓기로 했다. 영농기술이 없어 고구마 밖에 키워먹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현지에 있는 약사 한 분에게서 아이들이 누런 콧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기약을 잔뜩 보내줬지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감기가 아니라 영양실조 때문이더군요. 고달프고 가난하던 우리의 5,60년대가 생각났습니다.”

척박한 환경만큼이나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미개한 생활습관이다. 가족이 죽을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함께 묻어주는 풍습 때문에 할머니들의 손가락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놋껜’이라 부르는 바구니를 늘 머리에 매단 채 살아가는 여자들은 대부분 척추가 내려앉고 다리가 비틀어지는 몹쓸 병에 시달리고 있다. 사방은 모기와 벼룩의 천지인데다 아이들은 화상과 영양실조를 달고 산다.

그나마 선교사들의 손길이 닿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또 어느 깊은 곳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원주민의 마을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구제보다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약사는 학교가 문을 여는 9월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필요하다면 아예 그 곳으로 건너가 평생을 헌신하고픈 생각도 있다.

이준령 약사가 남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덕성약대(68학번) 재학 시절에는 야학 선생님으로 맹활약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약국 운영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22년 동안 한 동네 주민들과 부대껴 살다보니 이제는 터줏대감이 되었다. 어려서 이 약사의 약국을 찾던 어린이 손님들이 이제는 아기 엄마가 되어 다시 찾아온다. 의약분업 직후 처방조제에 어려움이 많아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대체요법과 한약을 적절히 응용한 탓에 무리없이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너무나 가난해서 죽어가는 오지의 아이들과는 반대로 풍요 속에 점점 메말라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고 한다. 중랑구약사회에서 9년째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약사는 특히 약사 사회 전체에 퍼져가는 ‘이기주의’가 걱정스럽다.

“약사의 미래를 놓고 볼 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상당수의 회원들이 참여는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늘어놓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하부구조가 튼튼하지 못하면 약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자기계발에 소홀한 후배약사들에게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는다. 공부하는 젊은 약사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좀더 많이 배우고, 자기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 약사의 위상을 높여갔으면 하는 것이 후배들에 대한 이 약사의 바람이다.

“봉사요?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어려울 것 하나 없어요.”

그러나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진정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에 이 약사의 겸손한 한마디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