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藥 ‘주권찾기’ 앞장선 모래시계 세대

지난호 릴레이인터뷰 첫 지면을 장식한 엄계숙 약사가 서울 동작구 흑석동 한강프라자 약국의 김영희 약사에게 인터뷰 바톤을 넘겼다. 엄 약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 약사는 지난 93년 이후 시작된 한약분쟁의 선봉에 선 초야의 투사. 역동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희 약사를 만나봤다.

한강프라자 약국. 6월 한여름 김 약사의 약국엔 고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 화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다름 아닌 김약사의 부군인 서승제씨가 이번 6·13 지자체 선거에서 2전 3기 끝에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축하하는 지인(知人)들의 마음씨들이 그대로 약국으로 옮겨왔기 때문.

전국적으로 한나라당이 휩쓴 선거에서 그것도 2전3기 끝에 거둔 당선이라 김영희 약사는 기쁨이 더하다. 지난 8년간 무직자이다 시피 한 남편의 아내라는 위치보다 후원회장 또는 선거운동원이고 싶었다는 김 약사.

남편인 서승제씨가 2전3기의 도전 끝에 시의원으로 당선되는데 남모르게 야전사령관 같은 역할을 한 김 약사의 이 같은 추진력에는 지난 93∼95년 있었던 한약 분쟁 때의 경험들이 오래된 화석 층처럼 차례대로 다져진 듯하다. 사실 남편이 현실 정치의 길로 입문했지만 후원회장 격인 김 약사의 활동은 그 대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로 중앙대 약대 80학번인 김 약사는 삶의 가치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의 한 쪽에 햇빛이 내리쬐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그늘이 씌워져 있지요. 전 대학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그 그늘을 이해하면서 살자고 생각했어요. ‘정치’라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그 그늘에 햇빛과 영양조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생각을 지녔던 김 약사이기 때문에 지난 84년 서울 마포구에 김약국을 열고 결혼하면서 남편의 후원회장이 되려고 했던 김 약사의 마음에는 늘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직도 여성의 정치참여가 말처럼 녹녹치는 않은 세월, 남편의 대리인을 자처한 셈이다.

그녀는 남편이 처음과 두 번째 선거에서 낙선한 다음날 담담하게 약국 문을 열며 환희로 가들 채워질 오늘을 기다린 셈이다.

그녀는 지금의 약사 사회를 경쟁만 있고 동지 의식이 없는 현장이라고 침울하게 표현한다. 한약분쟁에서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싸운 뒤 다시 돌아온 약국현장에서의 냉소적인 서로의 모습들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과거에는 약사사회에서 난매약국만이 유일한 내부의 적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약국들이 처방전 다툼을 하는 전쟁터로 변한 것 같아요. 경쟁이란 선의와 창조적인 사고방식의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약사 사회는 그렇지 못해요.”

김 약사는 가장 이상적인 약사가 어떤 약사냐고 묻는 기자의 물음에 “약사가 가장 약사다운 곳은 약국입니다. 공직약사나 제약산업에 종사하는 약사들도 있지만 약사 직능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약국이죠. 약국에 종사하는 약사는 바로 약 자체에 대한 주도자로서 국민에게 복약을 지도할 막중한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약사와 사이비약사와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이비 약사는 이른바 달력의 빨간색(공휴일)을 좋아하는 약사. 처방전에 혈안이 되어 있는 담합약국을 우회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김 약사에게 여약사로서 가질법한 애로사항에 대해 물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12살)과 딸(8살)을 두고 있는 김 약사는 서슴없이 ‘육아’라고 대답했다.

“약국 입문 초창기에 여약사로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육아였지요. 다행히 친정 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아이들도 아프지 않고 잘들 커온 것이 도움이 됐지만요….” 엄마랑 사진 찍자는 말에 8살짜리 딸 신영이는 다른 일을 하다가 금새 엄마품 속으로 달려왔다.

김 약사는 10년 안에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로 약학박사 학위 취득을 꼽는다. 약사로서 좀더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싶은 이유라는 김 약사의 소망이 잘 이루어지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