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약국과 학교교육에 일침
1980년생, 숙명약대 98학번인 황유정 약사는 지난 2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새내기 약사다. 겨울방학 동안 일선약국에서 관리약사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확실한 기본기를 다지겠다는 생각에 안양에 있는 한림대병원에 나이트 근무를 지원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서울시약에서 실시하는 신입약사 임상교육에 빠짐없이 참가할만큼 부지런하고 당찬 신세대다.

“잠깐 동안의 약국 근무는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어요. 카운터가 환자의 맥을 짚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적도 있어요. 약사라기 보다는 ‘약장사’에 가까운 마인드가 아쉬웠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사회생활이라 그런지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느끼게 됐구요. 무엇보다 큰 충격은 대학 4년 동안 배웠던 지식들이 실제 약국 근무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직 때묻지않은 새내기 약사에게 처음 해본 약국 근무는 그만큼 회의적이고 암울한 것이었다. 모든 약국이 그처럼 부조리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황약사의 말 속에 분업 이후 우리 약국의 어두운 단면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황약사는 비판의식이 살아있는 신세대답게 약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신랄한 일격을 가했다. 현재 약대에서 실시되고 있는 교육은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을 다루고 있어서 선택의 범위가 좁을 뿐 아니라 심층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약사국시 준비를 포함한 대부분 과목의 교육이 암기위주로 행해진다는 것도 문제. 병태생리학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는 그녀는 학부 과정 속에 실험실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암기식 교육 대신 창의적 연구과제가 주어졌다면 훨씬 더 흥미를 갖고 학교를 다녔을 거라 덧붙였다. 그러나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소중한 은사도 있었다고.

“미생물학을 담당하셨던 정규선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령이지만 온화한 성품과 논리정연한 강의 때문에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죠. 수업시간에 약사의 나아갈 길과 윤리의식에 대해 강조하신게 기억에 남습니다.”

실습과정에서 약사소명 깨달아
대부분 그렇듯 약사라는 직업에 대한 확실한 소신과 적성보다는 안정된 전문직이라는 주위의 권유에 떠밀리듯 약대에 들어온 그녀였다. 조그만 약국 속에 갇혀 기계적으로 생활하는 약사들의 모습이 일견 답답해보이기도 했다. 뜻이 없었던만큼 방황과 고민도 많았던 그녀가 약사라는 직업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은 3학년에 올라와 실습과정을 밟게 되면서부터였다. 실험실에서 여러 동기들과 함께 생활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추억이라고. 황약사는 비로소 실험실에 와서야 신약개발의 중요함과 그에 따른 약사로서의 사명을 느끼게 됐다.

“어찌보면 약대생들은 커다란 행운아들이죠. 약대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1차적인 꿈을 이룬셈이니까요. 그러나 안정된 직업을 찾아 온 만큼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느슨해지기보다는 자신이 정말 무엇을 위해 약사가 되고, 또 어떤 약사가 돼야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갓 입학한 새내기 후배들에게는 선배의 조언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대학원이나 병원약국 실습에 꼭 참여해볼 것을 권유하고 싶어요. 이론과 실무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겁니다. 진로를 선택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죠.”

황약사는 대학시절 두 번의 투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번은 한약분쟁 때였고 또 한번은 지난 2000년, 한창 의약분업 연기론이 고개를 들 무렵이다. 신입생 시절 멋모르고 참여했던 한약투쟁과는 달리 의약분업 연기론에 맞선 투쟁에는 소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민과의 약속이나 다름없는 의약분업 시행이 몇몇 이익단체의 주장에 밀려 훼손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약사의 사기 또한 저하되는 것 같아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의약분업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약사회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그때였다.

“투쟁에 참여하면서 약사사회를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구심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사회는 반드시 필요한 조직입니다. 함께 협력하고 고민하는 투쟁 과정 속에서 선배약사들과 약사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느꼈습니다.

다만 약사회 임원들과 일반 약사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은 점차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약사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모여서 함께 공부도 할 수 있는 친근한 조직이 돼 줬으면 합니다.”

평생공부의 중요성
이제 곧 연수과정을 마치고 안양 한림대병원의 병원약사로 활약하게 될 황유정 약사는 학교에서 배운 임상지식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서울시약의 신입약사 임상교육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밤 늦은 시간까지 강의를 듣다보면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만 각 질환과 약물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알 수 있어 보람도 남다르다. 황약사는 신입약사 임상교육을 받으면서 나이많은 선배약사들이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황약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약사상이란 ‘임상과 약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전문인’이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배약사의 모습들은 그녀에겐 귀감이 될 뿐 아니라 더 정진하라는 채찍질이기도 하다.

“공부는 평생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약사와 의사가 다른 점은 약사가 ‘약의 전문가’라는 사실이니까요. 더군다나 요즘은 약국에서 건강보조식품을 많이 취급하는데 이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반드시 배양해야겠죠. 약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이를 환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주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평생 공부하는 수 밖에 없을겁니다. 약사의 권위란 억지로 세우려한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스스로 노력하고 최고임을 자부할 때 자연스럽게 권위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
새내기답게 조금은 수줍어하기도 하지만 자기소신을 또박또박 말할 때는 누구보다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 황유정 약사. 아직 너무나 젊고 그만큼 하고싶은 일도 많은 탓인지 그녀의 장래희망은 하나로 압축되지 않는다. 해외 의료봉사팀에 지원해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 대학원에 들어가 좀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또는 훗날 멋진 약국을 운영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약사 생활을 하다보니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는게 느껴지더군요. 약사로서의 모든 활동에 환자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돼야할 것 같습니다.”

새봄, 새학기. 새롭다는 말이 무엇보다 어울리는 계절이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고 당당히 자기 꿈을 펼쳐나가는 신입약사의 모습에서 누구나 한번쯤 거쳤을 새내기 시절의 희망과 포부가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