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찰료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던 병원약사들의 봉기는 현재 약사사회에 많은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이 존재함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주위의 폭넓은 지지에 힘입어 ‘병원약사 현안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팀 결성’이라는 긍정적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사직서라는 배수진을 치고 이번 사태에 임하는 병원약사들의 태도는 여전히 비장하다.
8일 현재 병원약사회 사무국에 사직서를 제출한 병원약사는 약 4백50여명. 태스크포스팀 운영이 불성실한 방향으로 흐를 경우 즉각적인 사퇴와 함께 단체행동에 들어갈 요량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처럼 병원약사들이 비장한 각오로 무장한 이유는 비단 몇 푼 되지않는 원내조제료 때문만은 아니다. 분업 이후 병원약국은 연이은 이직사태로 인해 붕괴위기에 직면해왔으며 숙원사업이나 다름없는 법인화 추진은 대한약사회의 견제에 부딪쳐 번번히 좌절되고 말았다.
개국약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병원약사 고유의 직능과 자긍심을 내세우며 버텨왔던 병원약사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의약분업의 정착을 위해서라도 병원약국의 붕괴를 막을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것은 요즘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개국약사들에게 느끼는 상대적인 비애감은 병원약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의약분업은 병원약국, 보건소, 학계 등 변방에서 일하고 있던 약사들을 모두 개국가로 내몰아 심각한 ‘약사 공동화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일반직 공무원 7급의 대우 밖에 받지 못하는 보건소 약사들도 분업을 전후로 3/1 이상이 개국가로 빠져나갔으며 이같은 상황은 대학이나 식약청, 각종 연구소도 마찬가지. 개국약사에 비해 현저히 뒤쳐지는 대우와 작업환경은 물론 개국가에게만 집중되는 약사회의 관심 등이 점점 약사사회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직능의 약사들을 한데 포용해야할 대한약사회는 아직도 개국가 중심의 편중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분업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국약사들이 약사사회의 가장 중요한 세력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근무하든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약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다 같은 약사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병원약국, 보건소 등은 환경은 열악하지만 반드시 약사의 역할이 요구되는 곳. 대우가 낮다는 이유로 점점 약사들이 이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국가보건의료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최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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