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조사와 법의 지배>

“평온하던 사무실에 소란이 일었다. 공정위 조사공문을 받아 든 이 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업무용 태블릿을 챙겨 황급히 뒷문으로 나가는 김 대리를 막아서는 목소리가 말했다.

“김OO 대리시죠? 태블릿은 들고 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제출하세요. 조사방해는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거부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어요!”

행정조사에는 영장이 필요 없다. 행정조사는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이 아니므로 영장 없는 압수·수색을 금지한 헌법 제12조 제3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조세범 처벌절차법이나 자본시장법 등에서 일부 예외를 둔 외에 행정조사에 영장을 요구하는 규정은 없다. 사례의 조사공문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대상 등을 기재하여 발급하는 문서일 뿐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이 아니다.

행정조사에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의 기조에는 다음 두 가지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조사기관이 사람의 신체나 물건에 직접 실력행사를 할 수 없는 이상 행정조사를 압수·수색과 같이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행정조사에는 조사불응자를 형사처벌하는 등의 간접강제수단만이 허용되므로, 조사에 응할지에 대한 선택권은 여전히 국민에게 있다. 행정조사는 간접강제 수단만을 사용하며, 형벌이 아닌 위반행위의 시정이나 행정제재를 목적으로 하므로, 압수·수색과 같은 수준으로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행정조사 불응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행정기관에게 사실상 직접강제권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현행범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으므로, 행정기관은 현장조사 시에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는 국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함으로써 저항을 배제할 수 있다. 조사대상자는 순순히 조사에 응하는 것과 조사거부를 이유로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행정조사는 조사대로 집행되는 것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으므로, 선택권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권리침해의 정도에서도 행정조사는 범죄수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국민에게 더 불리하다. 범죄수사의 경우 공무원을 폭행·협박하여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지 않는 한 압수·수색을 저지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 없다. 반면에 행정조사방해를 처벌하는 규정은 ‘조사거부·방해·기피’라는 매우 포괄적이고 모호한 요건만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사대상자로서는 형사처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어떠한 적극적·소극적 방어행위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금융기관 임직원이나 공무원은 형사처벌에 더하여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감내하여야 한다. 조사불응이 영업정지 등 제재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수사기관의 강제처분과 비교하여 행정조사는 조사요건이 포괄적이고 조사범위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고지되지 않는다. “법위반 사항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또는 “이 법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등으로 조사기관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한 경우가 다수이다. 행정조사기본법은 현장조사 시에 조사범위와 내용을 제시하도록 규정하였으나 그 목적, 대상과 범위를 어느 정도로 특정하여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위 규정은 공정위와 금융위의 조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조사기관은 무제한적으로 조사범위를 확장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조사대상자는 자신이 어떠한 문제로 어떠한 범위에서 조사를 받는지 알지 못한 채 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불리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경우 행정조사 결과가 행정제재를 넘어 형사처벌로 이어지고 국민은 방어권 행사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고지되지 않고 진술거부권이 명확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인할 근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법원이 사전개입하는 것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정영장은 위법한 행정조사를 저지하는 것일 뿐 사법부가 행정부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시하고 명령하는 제도가 아니다. 외국에서도 이미 행정영장 제도가 시행 중이다. 미국, 독일, 프랑스의 경우 적어도 공정거래, 금융, 조세 등 주요 분야에서 행정기관이 신청하여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 또는 이에 준하는 법관의 사전허가에 따라 현장조사가 이루어진다.

행정영장은 헌법에 명시된 제도는 아니지만,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를 선언한 헌법의 정신에 부합한다. 2024년의 대한민국은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와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그때는 영장 없는 행정조사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르다. 법의 지배와 권리의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형사소송법도 그에 발맞추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동안 행정조사 관련 법제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언제까지 영장 없이 행정조사가 계속될 것인가” <법률신문6월26일자 한양대 로스쿨 박현정 교수 기고문>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한약사 개설약국의 전문의약품 실태 파악을 위한 행정조사 시행을 통보하였다. 영장없는 행정조사인 셈이다. 약사이원화에 살고 있다. 영장없는 행정조사가 근본적인 약사이원화변화,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양대 로스쿨 박현정 교수님의 원고는 의미가 있다.

▲임채윤 대한한약사협회 회장(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