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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특전사령관이 말하는 ‘부모노릇’부모가 나에게 생명을 주었듯이 새로운 ‘생명탄생’ 어어져야
이상우 기자  |  law0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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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30  06: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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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은 한국안보의 충격적인 한해였다. 3월에는 이웅평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침범해 제2의 6.25전쟁이 발발하는 것 같은 사이렌은 전국민을 놀라게 했다.

 같은해 10월9일 오전 10시27분쯤 미얀마(구 버마)아웅산 묘소.‘꽝’하는 굉음과 함께 아웅산 묘소의 목조건물이 무너져 내리자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장.차관급 공식 수행원18명이 쓰러졌다. 당시 전두환대통령을 수행했던 이 합참의장은 머리와 배에 파편이 박히고 다리가 서까래에 깔려 크게 다쳤다. 이때 25세의 중위 한명이 '2차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피투성이가 된 이합참의장을 업고 나왔다. 이 함참의장은 자신의 부관이었던 중위 덕분에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용감한 중위는 특전사령관을 지낸 전인범 육군 예비역 중장(육사37기)이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기자는 기억하고 있다.  2차 폭발위험에도 상관을 구한 전인범 중위의 위국헌신은 감동을 주었다. 세월은 흘러 전인범은 3성장군으로 예비역이 되었지만 나라사랑은 여전하다. 약국신문이 도전하는 '국가문제 저출산 언어운동'에 전인범 장군을 지면으로 초대했다. 군인으로 살아온 철학과 아버지로 살아가는 소회까지 진솔한 글은 인상적이었다. 전인범 사령관이 가진 지혜와 식견이 한국사회에 더 유용하게 쓰여지길 소망한다. 귀한 글을 보내주신 전사령관께 감사드린다<약국신문 주간 이상우>

   
▲83년 아웅산테러 당시 2차 폭발의 위험에도 이기백 합참의장을 구한 전인범 예비역특전사령관(사진)
전인범 예비역 특전사령관(육군중장)소개

전인범은

1981년 육사 37기로 임관하여 37년간의 군 생활 동안 수 없이 많은 전후방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아웅산 테러사건 당시 합참의장을 구해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었다.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되어 미국정부로부터 동성훈장과 한국정부로 부터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2007년 샘물교회 납치사건 당시 군사협조 단장으로 파견되어 인질 구출에 큰 공을 세우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율곡부대 대대장, 백마부대 연대장 그리고 이기자부대 사단장 재임시 敵과 싸워 반드시 이기는 강한 부대로 육성하셨으며, 한‧미 연합사와 유엔사에 재직하면서 한‧미 동맹 강화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 공로훈장을 세 번이나 받았다.

   
▲아웅산테러당시 전인범중위(오른쪽)는 상관인 이기백 합참의장을 구하러 나섰고, 이기백 장군은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당시 뉴스 화면)

특히, 특전사령관으로서 세계 최강의 특전사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함으로써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전역한 이후 한미 관계 발전을 위한 연구 및 교류 활동과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로 활동함과 동시에 미육군 협회 한국지부와 미 공군협회 미그 엘리 (MIG Alley)지부 부회장 등의 활동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한미관계 증진 그리고 군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더불어,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경남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를 취득 하는 등 그 학구적 성품과 평소 조국에 대한 충성과 애정, 그리고 헌신적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영원한 참 군인이다. 특히, 특수 및 지상작전연구회 고문, 동물자유연대 이사 그리고 한국모형 협회 고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기쁘다

 

장렬하게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꿈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 국가를 위해서 나라를 지키고 장렬하게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꿈이었다. 삶에 애착을 갖는 것이 마치 잘 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절제된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금연과 금주를 하였다. 웃지도 않았다.

 

육군사관학교의 규정은 나에게 편했다

육군사관학교 생활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딱 맞는 곳이었다. 규정을 성경처럼 여기며 살았다. 친구도 없었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주변에서는 나의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수시로 확인해 주었다. 6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는 나를 떠났고 뽀삐라는 개만이 나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는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

1983년 버마 아웅산에서 북한의 테러로 죽을 뻔했다. 또 높으신 분들이 시체가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내 나이 24세였는데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장렬하게 죽으려면 결혼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솔직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언제 죽어도 문제 없겠다고 생각이 들어 결혼을 했다.

 

잠자는 첫째를 보며 형제자매의 필요성 느꼈다

우리 둘은 직장을 갖고 있었다. 나는 가정 보다는 부대가 먼저였고 아내는 자기 직장과 가정을 둘 다 지키려고 했다. 매일 밥을 챙겨 주고 집안을 하루에도 몇 번 청소해서 의아했다. 바쁜데 왜 저러지? 우리의 사회생활로 인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신 기간 동안 한 인간이 태어나기까지의 정성을 보면서 생명의 귀함을 느꼈다.

우리는 아이를 하나만 낳으려고 했다. 첫 아들을 낳고 나서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도저히 둘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첫째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날아다니는 새도 하나님이 먹여 주신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둘째를 낳았고 모든 부모가 겪는 고통을 다 경험하고 있다. 가끔 두 놈을 때려주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만 버리면 괜찮은 아들들이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는 인생지혜가 있다

나는 군인으로서 대대장 때는 남의 집 자식 500명, 연대장 때는 2,500명 그리고 사단장 할 때는 1만명을 책임지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면서 내 두 아들에게 시키지 않을 일은 절대로 부대원들에게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입원중인 병사를 격려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사진)

 

대한민국의 자녀양육현실 잔인하다

우리나라의 자녀 양육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다 아는 얘기이다. 이 모든 것이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다. 고치지 못하는 이유도 욕심 때문이다. 그러나 경고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큰 집이 무슨 소용이고 5G가 가져 올 혜택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우주와 인간의 삶은 같은 순서를 갖고 있다. 태어나서 나이 먹고 병들고 죽는 것이 그 순서이다. 우리가 우리 욕심 때문에 가정을 이루지 않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다. 자연의 섭리와 신을 믿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맞다. 나는 이러한 자연의 뜻을 이루다 보면 써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아직까지 오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고 희망이 되는 삶을 살 것이다

나는 군 생활을 끝내고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지도 않았다. 젊을 때는 영광을 쫒았지만 그 영광 뒤에 내 휘하의 부하들의 죽음과 국민의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평화를 지킨 무명의 군인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희망이 되는 삶을 살다가 마감하려고 한다. 그리고 위에 말한 써프라이즈를 기다려 본다.

   
▲전인범은 군인의 영광은 전장에서 산화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부모가 나에게 생명을 주었듯이 새로운 생명탄생은 어어져야

우리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하지만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식을 낳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나의 부모가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이 영혼을 주셨듯이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누군가에게 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걱정하지 마라. 날아다니는 새도 하나님이 먹여 주시니까...

'국방안보전문 유튜버' 전인범 사령관

   
▲전인범사령관은 미군과의 관계가 돈독하다.그가 가진 자산이 더 쓰여지길 기대한다

국방안보만큼이나 식견과 경험이 중요한 분야는 많지 않다. 3성장군의 경력에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등을 역임한 전인범 사령관의 유튜브 방송은 귀하다.

그간의 방송내용은 1.전작권문제 2.북핵문제3.진급의 허와 실4.장교 부사관의 메카니즘 5.경계작전의 새로운 패러다임6.사이버 강국 북한 등 어느 매체에서 볼수 없는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전인범 사령관은 한국군의 엘리트로 그동안 보고 들은 지혜를 후배들과 국민에게 전하는데 오늘도 앞장서고 있다.

   
▲전인범 특전사령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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