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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약국 복원,국민에게 ‘이익’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이상우 기자  |  law0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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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4  12: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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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물결약사회 회장 유창식

성균관대 약학대학 졸업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 대의원회의 제2대,4대 의장(전)

비밥스쿨 대표(현)

새물결약사회 회장(현)

   
▲유창식 새물결약사회 회장(사진)

약국, 다시 지역주민과 함께

약국을 경영해본 약사라면 누구나 첫 약국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늦은 나이에 다시 약대에 들어간 탓에 어서 빨리 내 약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일년여의 비교적 짧은 근무약사 경험만으로 첫 약국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방 조제보다는, 약사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반약 상담 판매에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수입도 크지 않고 처방전도 많지 않지만 일반약 환자가 어느 정도 있는 조그만 약국을 시작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의 한적한 곳으로, 앞에는 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이 놓여있고 건너편에는 가구단지와 빌라촌이, 뒤로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은 곳이었다.

질병 뒤에는 인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우리 약국은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아니었지만, 약을 사러 온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저 약이 필요한 사람에게 약을 주면 그 뿐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병 뒤에는 크든 작든 그 사람의 인생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잇몸질환이 많다. 연세가 아주 많은 어르신들은 대부분 변비로 고생을 하는데, 변이 굳어서 나오지 않으면 화장실에서 손가락으로 파내기도 한다. 매우 불편하지만 창피해서 식구들에게 말도 하지 못한다. 삶이 병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병 때문에 삶이 바뀌기도 한다.

환자와의 소통은 쉽지 않다

붙임성이 적은 성격 탓에 동네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여러 일이 있었다. 늦도록 결혼을 안 했다고 하니 혈압약을 타가시는 단골 아주머니가 친척 아가씨를 소개해주신 적도 있다. 약국에 오시기만 하면 일제 시대에 소학교에서 배웠다는 노래를 불러주곤 하시던 할머니도 계셨다. 나는 약국 경영이 어려워져 폐업을 하기 얼마 전, 할머니가 우리 약국을 나서는 뒷모습을 몰래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다시는 못 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약국은 주변에 유흥가와 사무실이 많다. 단골이라 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약을 사러 약국에 와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직업이 무엇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습관이 있는지 약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이 필요한 약이 무엇인지 말할 뿐이다.

한때 약국이 지역사회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 약국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기에, 약사의 말이 동네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약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한 것인 지 의심스럽다.

일반약 지명구매가 늘고 있다

환자와 약국의 관계는 분명 예전과 달라졌다. 수십 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명확하다. 병의원이 많지 않고 환자가 치료나 약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곳이 마땅치 않던 시절에는 주민들이 동네약국에서 자신의 건강 문제를 상담하거나 크고 작은 질병을 약사를 통해 치료 받는 일이 흔했다. 특히 의약분업 전에는 약국에서 각종 질환을 직접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마저 가능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여기에 더해, 한 곳에서 수십 년 동안 약국을 운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아 동네사람들과 약사 사이에 긴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었고 이는 약사가 환자를 전인적으로 돌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의약분업 후 동네약국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치료의 주체가 누구인지 확실히 자리매김된 것이다. 처방을 통한 치료의 경우 그 주체는 의사다. 처방을 통하지 않은 경우 환자가 점점 그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생활에서 일상화되면서, 가벼운 질환에 일반약을 사용할 때도 약사의 도움을 통해서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거쳐 제품을 구체적으로 지명하거나 병에 대해 사전지식을 얻은 후 약국을 방문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해졌다.

국민뇌리속에 약사가치, 인식시키는 노력 부족하다

또 하나 생각해볼 점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직업 관계에서 인간적인 부분이 줄어들고 그 자리가 소비라는 형태로 대체되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교육에서 사제관계라는 인간적인 부분은 약화된 반면 입시를 위한 지식 전달 서비스를 소비하는 행태는 강화되었다. 이는 보건의료에서도 마찬가지로, 의사 또는 약사와 환자가 맺는 관계는 소원해지는 대신 의료 서비스나 의약품을 소비하는 행태는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약사의 역할과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의약분업 이후 약사사회의 가장 큰 과오를 꼽으라면, 의약분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약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직능인지 정립하고 국민에게 인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약국이 아닌 곳에서 약사가 아닌 사람이 일반약을 취급하는 현재의 편의점약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의약품은 약사의 관리와 지도를 통해, 약사와 상담을 거쳐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정립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편의점약은 얼마든지 또 다시 약사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 법인약국과 의약품 택배 등이 그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보건의료를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민간 보험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약사의 새로운 역할을 정립하고 약사가 국민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동네약국 복원비젼을 여는 고령시대 이미 '시작'

동네약국의 가치를 되살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끊어지고 멀어진 환자와 약사의 관계를 다시 잇고 가깝게 하려면 동네약국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정보는 넘쳐나지만, 부정확하거나 광고성인 경우도 많다. 환자가 비합리적으로 판단하거나 단편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때 이를 바로 잡고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또한 약사의 역할이다. 하지만 환자가 약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역주민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은 동네약국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동네약국을 기반으로 제대로 된 약료 서비스를 꾸준히 펼침으로써 약사의 역할과 가치를 국민이 인식하게 한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동네약국을 다시 복원한다는 비전을 단지 개별 약국들의 희생과 노력만으로 이루기는 어렵다. 국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의약분업 후 약국들이 처방전을 쫓아 병원 밑으로 옮겨간 것이 동네약국 해체의 시작이었다. 또한 이는 약국이 병원에 종속되게 만들어 약사가 처방을 검토하고 중재하기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병원이 아닌, 지역 주민 곁으로 약국이 돌아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약사회가 할 일이다. 지역 주민과 유대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방문약료는 충분치는 않지만 긍정적인 시도다. 병원에 종속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성분명처방은 매우 중요하다.

   
▲동네약국 복원고리로 유창식 회장은 '성분명처방'을 말했다. 과학자인 약사가 개입해 약값을 줄이는 것은 합리적이다.약국신문 발행 성분명처방도서(사진)

그러나 대한약사회의 행보를 보면 과연 실현 의지가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처방은 여러 병원에서 받지만 조제 투약은 정해진 약국에서만 받는 일본의 단골약국 제도도 참고할 만 하다.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행위별수가제가 아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총량을 지불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영국식 인두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정책으로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동네약국이 더욱 성공적으로 복원되어 우리가 바라는 대로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환자가 표하는 신뢰가 약사를 기운나게 한다

돌이켜 보면 약사로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은, 약사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통해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환자가 약사인 나에게 신뢰를 표시할 때였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경험보다는 씁쓸하고 괴로운 경험이 훨씬 많았다. 지금 약국에 발을 들이는 새내기 약사들은 이런 뿌듯한 경험을 할 일이 더욱 적을 지도 모른다. 지역주민이라는 토양에 단단히 뿌리내린 동네약국을 복원해야 하는 것은 그저 과거 약국이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다. 약사들 앞에 놓인 험난한 도전을 헤쳐가기 위한 필살의 방책이자, 약사로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이라는 꿈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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