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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새로운 도전과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실패 경험’은 능력의 한계점을 도전한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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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1  10: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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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를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법

독한 마음으로 제약 영업에 뛰어들고 나서 몇 년간 나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거래처를 뚫지 못한 적이 없었고, 내 지역에서 선두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으며, 매달 매분기마다 계획한 실적을 달성했고, 매출액 전국 1위까지 놓친 적이 없었다. 열정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일을 하면 늘 기대 이상으로 크게 돌아왔기 때문에 늘 그럴 줄 알았다. 내 진심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줄 알았다.

그러던 내가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된 사건이 있었다. 대웅제약 영업실장으로 일하던 1980년, 처음으로 전자모기향이 출시되어 제약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 살충제 시장은 스프레이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전자식 모기향의 등장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각 제약회사마다 신제품 판매와 홍보에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 특히 영업사원들은 신상품 출시가 개인적인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에 새 시장과 판로 개척을 위해 저마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때 내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대한어머니회’의 임원인 K씨가 전자모기향을 3억 원어치나 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자모기향 3억 원어치면 회사 전체 판매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매트킬러 한 개당 3천 원이었으니 무려 10만 개를 사겠다는 말이었다. 당시 3억 원이면 현재 가치로는 30억 원이 넘으니 금액도 엄청 컸다. 대한어머니회는 공신력 있는 조직이라 돈을 떼일 염려는 없을 것이고, 경쟁이 심한 신제품을 담보와 함께 3억 원짜리 어음으로 끊어주겠다는 결제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이번 계약 건을 내가 관할하는 영업소 실적으로만 돌리지 않고 회사 실적으로 돌렸다. 이렇게 큰 계약은 한 지역이나 개인이 독차지하기보다 조화를 맞추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약이 성사되자 회사 안에서 “역시 이희구!”라는 칭찬이 쏟아졌고, 부러움 섞인 인사도 많이 들었다. 칭찬과 부러움 속에 우쭐할 틈도 없이 10만 개 제품을 정해진 기일에 맞춰 생산하기 위해 회사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당장 생산 라인이 증설되었고, 공장 직원들은 추가 근무에 돌입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원자재 수입도 대폭 늘렸다. 공장을 연일 풀가동하여 제품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납품할 물건 10만 개가 모두 완성되던 날 K씨가 와서 제품을 실어 갔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K씨와는 연락이 끊겼다. 물건 납품 이후 그 단체의 사무총장과 면담이 약속되어 있었으나 면담은커녕 당사자와 연락도 되지 않았다.

사태의 전모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전자모기향 10만 개가 헐값으로 전국 재료상과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가 남겨놓은 담보증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그는 대한어머니회 조직 내에서 문제를 자주 일으켜 이미 해임된 전직 임원이었고, 철저한 사기꾼이었다. 나는 그의 농간에 너무나 쉽게 넘어간 것이다.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물건을 만들고 포장하고 운반한 직원들, 내가 가져온 거짓 계약서 하나만 믿고 전 직원과 회사를 풀가동케 해준 임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당장 2억 4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고스란히 회사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어떤 식으로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확대 임원회의가 소집되었다. 개인의 실수로 돌리고 용서받기엔 회사에 끼친 손해가 너무 컸다. 나는 얼마 안 되는 개인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조금이라도 회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회사 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두 제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사표가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책임은 져야겠기에 오늘 사표를 제출하겠습니다. 피해 금액은 제 형편이 닿는 대로 최대한 갚겠습니다.”

● 모기향 3억 원어치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것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영업 인생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한순간의 실수로 다 잃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윤영환 회장이 내 입장을 두둔해주었다. “사장까지 결재한 뒤 공식적으로 진행된 계약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영업한 것도 아닌데 책임을 물어선 안 됩니다. 또 어찌 되었거나 우리 회사 제품이 시중에 다 흘러나가 집집마다 사용하고 있으니 제품 홍보 효과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3억 원은 광고비로 생각합시다. 돈을 잃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좋은 인재까지 잃으면 회사로선 더 큰 손해입니다.”

그렇게 회사에 남게 된 나는 며칠 후 회장실에 불려갔다. “당신은 3억이나 되는 교육비를 쓴 비싼 사람이야. 그러니 함부로 행동하면 안 돼. 머리도 식힐 겸 이번 기회에 유럽 여행이나 다녀오지 그래. 마침 독일 킬 대학에 경영 세미나가 있는데 거기도 참석하고.”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친 사원에게 문책은커녕 해외 연수 기회까지 준 윤 회장의 태도는 지금도 나에게 큰 감동과 교훈이 되고 있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재기의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와 애정이 더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난 유럽 여행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지금이야 해외여행도 자유롭고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 다른 나라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는 해외여행이 쉽지 않을 때라 서구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직업관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을 신통치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은 세일즈야말로 진정한 비즈니스라고 인정해주었다. 우리의 직업 문화와 일하는 자세 등에 대한 반성과 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함께 일깨워준 값진 여행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독일 킬 대학에서 주최하는 경영 세미나였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을 더 깊이 천착해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회사에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회사를 위해 내가 할 일의 목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일에 파묻혀 지낼 때는 깨닫지 못했던 문제들이 좀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니 객관적으로 보였다.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어렴풋하나마 가닥이 잡혔다. 회사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그려졌다. 서울에 돌아가면 또다시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하겠지만 더 발전된 방향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패를 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어도 계속 좋은 실적은 거두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에 대해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또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우지 못했다면 나를 믿어주는 회사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회사와 업계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성공은 자신감과 추진력을 주는 값진 경험이지만, 자신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 실패 경험이 없는 사람은 윗자리에 앉히지 말라

미국 스탠포드 대학은 원래 명문대학으로 유명하지만 실리콘벨리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창업자를 배출해낸 학교로 더욱 유명하다. 이 대학의 ‘기업가정신센터’ 책임자인 티나 실리그 이사가 한 인터뷰에서 수많은 창업자를 배출한 비결에 대해 ‘학생들에게 큰 도전을 해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케 하는 교육 과정’이라고 대답한 것이 생각난다. 혁신에서는 실패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혁신을 원하는 기업가는 기꺼이 실패할 자세를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같은 이유로 직원을 채용할 때 성공 경험보다 실패 경험을 더 주목하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실패의 가장 좋은 점은 다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실패에 넘어질 수 있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실패를 만났을 때 실패해 본 사람은 그것을 회복해본 경험으로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한 번도 잘못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윗자리에 앉히지 말라’라고 했다. 잘못을 저질러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잘못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빨리 고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스탠포드 대학의 기업가정신센터는 학생들에게 ‘실패 이력서’를 쓰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패 이력서는 자신이 저지른 큰 실패와 실패를 통해 배운 점을 요약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충분한 위험을 감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또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도전해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실패를 자청할 필요는 없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성공을 위해선 실패 경험이 필요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 내 실패 이력서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성공을 향한 길 중에서 막다른 길을 하나 더 알게 되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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