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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지나 행복을만드는집 시설장‘봉사’는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대‘
이효인 기자  |  pharmlhi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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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8  09: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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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대‘

“희망을 찾은 소외 이웃의 모습, 큰 행복이자 기쁨”

봉사는 약사를 빛나게 한다는 주제로 글을 부탁받은 당시에는 흔쾌히 약속을 했지만 막상 글을 준비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대학 졸업 후 약업계에서 일한 시간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시간이 제게 훨씬 많았기 때문에 어떤 연결고리로 빛나게 풀어야할지를 고민을 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실천한 봉사보다 받은 봉사와 사랑이 너무도 큰 까닭입니다. 과분하게도 2016년에는 유재라 봉사상(여약사부분)도 수상하였습니다.

   
▲ 제19회 유재라봉사상 여약사부문에서 수상한 이레지나 약사(가운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복지국가 대열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복지현장과 실무자에 대한 지원이나 처우는 매우 열악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약 5,000만명 중 618만명이 4대 중독(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의 중독자로 추정되고 있으며 중독으로 인한 폐해는 중독자뿐만 아니라 가족 및 사회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 문제로서의 중독문제 또한 심각한데, 폭행 및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의 경우 약 30%이상이 음주상태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중독문제로 인한 건강문제 또한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마약 및 알코올중독에 따른 문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있으나 이러한 중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책이 미흡한 실정을 알아가면서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약사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소명 의식을 더욱 굳혔습니다.

20여년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약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를 존중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운영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직접 활동해서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었던 순간들, 아픈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만지고 보듬어주는 순간들이 약사로서의 능력이 빛을 발하였다 생각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빛으로 살아온 것이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1988년 약대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개업약사로 하루 12시간 이상씩 근무하며 만나는 손님 한 분 한 분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삶이 오롯이 약국에 머물러야만 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주말에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진행하는 주말진료에 참여하였습니다. 황금 같은 휴일에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주말진료에 나가면 그 이상의 에너지를 얻고 돌아왔습니다. 하루 200여명의 환자분들의 약포지를 손으로 싸고 복약지도를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봉사활동을 이어나가던 중 서울 신림동에 위치(1997년 영등포로 이전)한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요셉의원 이라는 무료진료병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의원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운영하던 약국은 후배에게 인계하고 요셉의원 약국에서 주2회 자원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주 허름한 곳이지만 그곳에서 먹는 밥이 맛있었고, 만나는 봉사자들이 정겨웠고, 의원을 찾아오는 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거의 매일 찾아왔고, 봉사자들은 그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옷을 제공하고 이발, 샤워, 세면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며 그들의 비빌 언덕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요셉의원에서 만난 많은 분들 중 지금은 고인이 되신 특별한 분이 떠오릅니다. 신림시장 근처 노숙자로 새벽에 시장 일을 봐주고, 의원이 문을 열면 오셔서 진료대기실에 자리 잡고 누워 코를 심하게 골며 주무셨습니다. 노숙상태라 냄새도 심하게 나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분과 친분이 쌓이며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항상 오시면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가 봉사자들과 함께 퇴근하였습니다. 몇 년 후 그분은 술을 끊고 살기로 결심하고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요셉의원에서 만난 노숙자들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 문제가 있으셨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무섭게 느껴지던 작은아버지가 중독자셨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요셉의원 설립하신 원장님께서는 저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중독에 대해 알게 된 후, 사회복지를 대학원에서 전공하게 되었고, 중독에 대한 전문적인 기회를 갖고자 수도회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이태리 몬도-X 라는 약물중독자 치료공동체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태리 말을 배우고 치료공동체에서 체험하면서 한국에 돌아오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봉사할 마음을 굳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여성알코올중독자 한분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에 머물며 술을 끊고자 A.A.자조모임에 나오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중독자는 거의 만날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성은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했고, 저도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중독문제를 가진 여성분들과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런 경제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약 2년간 모 대학병원 야간약사로 근무했습니다. 월급은 모두 운영비로 들어갔고, 대학 선후배, 친구, 가족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후원금을 조달했습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약사로서 사회복지현장에서의 활동은 큰 자부심이었고, 위안이었습니다.

2004년 강동구에 기초를 두고 뿌리를 내린지 벌써 13여년 이란 시간을 맞이합니다. 처음에 만났던 여성들은 거의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분들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너무 지쳐 떠나버린 여성들과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내면을 채우고 따뜻하게 데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초기에 저는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의 대가나 보상으로 단주와 회복이 다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약 2년이 지나 완전히 소진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을 때 1년 단주자가 나왔습니다. 1년생은 꽃이었고, 희망으로 피어났습니다. 희망의 빛을 보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노력과 전문지식만으로는 투자가치의 100 아니 10 아니 단 1%의 보상도 불가능한 일임을 너무도 뒤늦게야 배웠습니다.

삶 전체가 공동체 안에 녹아듦으로써야 비로소 중독이 무엇이고,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중독이란 무서운 괴물 같은 병이 아니고 중독자란 나와 너무 다른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치료공동체에 와서 자신의 생각으로 선택한 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듣고 변화합니다. 이제는 술이 아닌 긍정적이고, 건강한 방법으로 상처를 이겨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용기가 없어서, 극도한 스트레스로, 분노로, 상처로 술에 의존했던 방법이 아닌 정직하게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공동체원들간에 야기되는 불화와 모순들을 대화로 풀어가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봉사를 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대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한참동안 평펑 눈물을 쏟아낸 후 한마디씩 내뱉었습니다. 공부도 중도에서 포기하고, 유흥업소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가족은 외면하고 찾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 분노가 치솟습니다. 분노가 오를 때 술이나 약을 해야 분노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해칠 염려로 치료보호 병동에 입원을 했습니다. 몇몇 병동에서도 난동을 피워 결국은 강제퇴원을 당합니다. 여성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삶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응원군이 있다는 신뢰가 아주 조금씩 싹트고 있습니다.

2005년 무더운 여름날 20대 후반의 한 여성이 퇴원하자마자 공동체에 입소하였습니다. ‘김혜수’를 닮은 여성은 불운한 가정사로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시간에 관계없이 찾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약 3개월이 지난 어느날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건물 앞에 있는 나무에서 어떻게 목을 맬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여성을 힘주어 안으며 같이 눈물 흘렸습니다. 1년 후 여성은 사회복지학과 3년에 편입 공부하여 사회복지사로서 현장에서 두발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10년 후에는 결혼을 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아들을 낳아 기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한달간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공동체에서 머문 시간들이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토닥이고, 응원하고, 기쁜 일에는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혈연관계가 아닌 분들이 가족이라는 표현으로 뭉치고 같이 살아갑니다. 저도 그들과 한 가족으로, 동료로, 새날을 맞이하고 새날을 살아갑니다.

저는 이 소중한 순간들이 모여 세상에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육체적으로 아픈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약학을 전공했다는 것은 큰 자부심입니다. 게다가 사람의 아픈 몸뿐만 아니라 아픈 마음도 함께 어루만질 수 있는 약사가 되었다는 것에 무엇보다도 큰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귀하고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약사여러분, 여러분의 그 재능이 봉사를 만나면 헤아릴 수 없는 큰 기쁨으로 각자에게 돌아옵니다. 봉사는 약사를 빛나게 하고 그 빛은 이 세상을 비추는 등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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