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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웅 유명종로약국 대표약사‘배려’·‘나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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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3  0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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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나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

“약사, 봉사를 위한 최적의 직업”

   
▲ 서웅 유명종로약국 대표약사

최근에 영화 라라랜드를 보았다. 영화 내내 계속되는 흥겹고 세련된 음악과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는 영화의 흥행을 이끈 동력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이 영화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여주인공의 대사이다. 계속된 오디션 불합격에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오디션 안 볼 거야.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나는 원래 약학도가 아니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까지 마친 후 국내 대기업 자동차회사에서 자동차 설계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이 30세가 되던 해에 ‘한번뿐인 인생, 가치 있는 삶이란?’ 강의를 듣게 되었고, 한 달 넘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생목표를 정했다. 어린 나이에 생활고를 겪으며 꿈조차 가지기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는 나름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을 경제적으로만 도울 뿐 아니라 의료인이 되어 아픈 곳까지 돌봐주고 싶었다.

그리고 과감히 사표를 내고, 수능 시험을 준비했다. 2번의 불합격. 3번째 도전, 드디어 34세에 약대에 합격했다. 합격 후 지금까지 깨끗하게 잊고 있었던 준비과정중의 고통을 라라랜드 영화를 보면서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고등학교 성적으로 약학도가 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기로 작정하고 약사가 되었다.

2010년, 약대를 졸업하자마자 계획한대로 어린이재단 초록우산을 통해 소년소녀가장(지금은 조손가정이라고도 한다) 5명을 소개받아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때 후원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얼마 전 선생님이 되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는 한 아이의 편지를 받았다. 우와! 편지를 받았을 때 감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였다. 내가 소설 속 키다리아저씨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어려움을 딛고 잘 자라준 아이가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그간 후원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고, 자신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작은 후원과 나눔이 누군가의 감사함의 원천이 되고, 삶의 큰 원동력이 되고, 각박한 세상을 따뜻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우연한 기회에 해외의료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2012년 여름, 부인 이숭령 약사와 중학생 큰아들, 둘째 초등학생 딸과 함께 가족 모두 아프리카 케냐 의료봉사에 참가했다. 아프리카의 어려운 현실은 TV로 봐왔던 그대로였다. 아파도 약을 살 돈이 없는 가난, 오염된 식수와 환경,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의료 시스템. 의료캠프 기간 내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으로서 눈물이 났다. 이들은 단지 아프리카에 태어난 죄밖에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개선을 해나가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는 환경이었다.

대한민국이 완전히 폐허가 된 한국전쟁 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뜨거운 교육열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으로 아프리카가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첫 번째 단추가 되지 않을까. 아니 제발 그리되기를 바래본다.

의료 캠프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되었다. 하루에 대략 1,500여명의 환자들이 캠프에서 무료 진료를 받고, 무료로 약을 받아 갔다. 9시부터 진료를 시작했는데, 훨씬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의료 캠프는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환자 대기줄은 캠프를 빙빙 감았고, 각 진료실마다 환자가 가득하였다. 진료를 받고 약국에 약을 받으러 온 환자도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한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약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수동 포장기로 일일이 약을 조제하니 속도가 느리기도 했지만, 워낙 환자가 많았다. 몇 시간씩 기다리는 환자들 생각에 점심,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쉴 틈 없이 일했다.

나중에는 밀린 환자들에게 다음날 약을 주기로 하고 돌려보낸 후 밤10시까지 계속해서 약을 조제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그대로 쓰러져 자고 다음날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캠프에 와서 밤10시까지 일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의료봉사단 모두가 힘들게 일하고 있었지만 캠프와 숙소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신기하게도 한명도 힘든 표정 없이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오늘 봉사 도중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대며, 나누는 즐거움, 봉사하는 행복을 함께 공유했다.

치과에서는 굉장히 아플 텐데도 아픈 내색 없이 진료가 끝날 때 까지 참는 환자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프리카까지 와준 의료진에게 감사한 마음에 아무리 아파도 하나도 안 아팠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그래서 환자에게 오히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외과에서는 멀리서 온 환자를 돌려보낼 수 없어서 새벽 2시까지 수술을 했다고 했다.

약국에서는 아이 환자가 오면 약 봉투에 미리 가져간 아이들 비타민 캔디를 먼저 담고 그 위에 약을 담았다. 아이 엄마에게 약봉투를 보여줄 때 나는 아이 엄마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아이가 아픈데다가, 낯선 한국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의사와 약사를 처음 만나는 아이 엄마는 긴장된 얼굴이었다가 약 봉투 밑에 담긴 캔디를 보며 조금씩 수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나도 같이 미소 지으며 목례를 하면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조제해준 약은 아이의 병을 낫게 할 것이고, 밑에 담긴 캔디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달해 주리라 생각한다. 아무도 남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인데,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와서 자신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들에게 희망이고 우리가 전해주고픈 사랑이고 인류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케냐 의료캠프 동안에 약국에서 일을 도와준 현지 약대생들이 있었다. 정말 23세였는데 동네 아저씨 같아서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던 베네딕트와 스마트 하게 일을 잘하는 여대생 베티, 성실과 열정이 넘쳤던 데니스, 약물학 실력파 피터. 바쁜 약국 일과 속에서 이들이 열심히 일을 해주었고, 게다가 언어가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인들에게 복약지도는 현지 약대생들에게 거의 의존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약대의 제대로 된 교육 때문인지 성분명만 알려줘도 복용법을 능숙히 읊어대는 이들의 도움은 정말 컸다.

이들 모두 한국이란 나라를 들어만 보았지만 매년 찾아오는 의료봉사단 덕분에 친숙하게 느끼고 있었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들어와 약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었다. 틈이 나면 네 명이 모여서, 한국을 상상해보며 한국에서 일하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해했다. 지금도 가끔씩 순수했던 케냐 약대생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릴만큼 그립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다. 언젠가 내가 다시 케냐에 가게 되든지, 아니면 이들의 꿈처럼 이들이 한국에 오게 되든지,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봉사를 하면서 부가적으로 얻게 되는 가장 큰 소득 중에 하나가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물질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자기 시간과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니, 모여서 회의라도 하면 처음 보는 사람도 10년 지기 친구처럼 금방 대화가 통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니 힐링이 저절로 된다. 그리고 아프리카, 네팔, 우간다 등 해외의료 캠프를 다녔던 현지에도 마찬가지로 정말 그립고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생긴다.

요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 간 대립, 국가 간 분쟁, 종교적 분쟁, 인종 간 분쟁 등 끊임없이 안타까운 소식들이 넘쳐나는데 이러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 바로 나눔, 봉사 등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행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4년 4월 16일,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사고 직후 다음날 이태식 전남약사회장님이 의견을 내서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에 대한약사회 봉사약국이 각각 설치되었다. 봉사약국 운영을 위해 현장팀(최기영 완도 분회장, 이승용 약사), 의약품 공급팀(박병훈 진도 분회장), 인력지원팀(서웅 전남지부 약국이사) 등 3개 팀이 구성됐고, 당시 이태식 전남지부장의 총괄 지휘 아래 역할을 수행했다. 인력지원팀으로 내가 맡았던 일은 2개의 봉사약국이 24시간 운영되도록 약사님들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상상해보라. 2개의 약국을 24시간 운영한다는 것. 그것도 전남의 끝 진도에.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봉사약국이 설치되었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전국에서 약사님들이 근무하시겠다는 전화가 얼마나 많이도 오는지, 밤낮 없이 전화가 오고 새벽에도 전화가 와서 자다가 전화를 받을 정도였다.

신청하시는 약사님들이 어찌나 많은지,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어서 대한약사회 사무국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근무계획표를 만들어 놓고, 약사님들이 릴레이 근무를 하실 수 있도록 배정을 해드렸다. 4시간 근무를 위해 서울에서 9시간동안 버스타고 진도까지 오신 약사님도 계셨고, 한번 와서 3일간 근무하신 여약사님도 계셨다. 제주도에서 매주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약사님도 계셨다. 약국 끝나고 무작정 출발해서 새벽에 목포에 도착했는데 차편이 없다고 전화하신 약사님을 진도까지 모셔다 드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호 대한약사회 봉사약국을, 전국에서 참여하신 1,157명 약사님의 릴레이로 137일간 24시간 운영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 약사님들의 자발적 재능기부였다.

약사님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근무시간에 외출하는 것이다. 혼자 근무하는 나홀로 약국이 많은 것도 원인이고, 약국에는 반드시 약사가 근무해야하는 것도 이유이고, 외출하기 위해서는 대체약사를 고용해야 하지만 이것도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천명이 넘는 약사님들이 머나먼 진도까지 찾아와서 봉사약국에서 근무했다는 것은, 외출하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도 남을 ‘봉사’라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봉사약국을 운영해보니 약사라는 직능이 재난 상황에서 봉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 평소 약국에서 서있는 상태로 근무를 하다 보니, 아무리 약국이 좁고 자리가 불편해도 근무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워낙 약이 다양해서 약국에 처음 보는 약품이 진열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성분명만 보면 바로 약을 이해하고 복용법을 알 수가 있었다. 실제 세월호 봉사약국을 운영할 때도, 릴레이를 주고받은 약사님들 간 업무인계인수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단 한번!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에 이른다. 바위처럼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1억을 가지면, 2억을 가지고 싶어진다. 물질적인 것은 절대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딛고 숙녀가 된 주디가 이렇게 편지를 썼다. ‘제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족이 생긴 기분이에요. 이제 저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행복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배려하며, 함께 나누고, 어느 누구도 외로이 버려지지 않는 따뜻한 세상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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